국내 증시가 사상 초유의 호황을 맞았지만 한국 경제에는 구조적 취약성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반도체 독주가 만들어낸 증시 호황은 오히려 경제 전반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며 과도한 낙관론을 경계하게 만든다. 특히 기록적인 고물가에 가로막힌 내수 온기와 얼어붙은 소비 심리는 지표상의 풍요와 서민 체감 경기 사이의 극심한 괴리를 증명하고 있다.
◆1년 9개월 만의 최고 물가…“장보기가 겁난다”
14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6%로 가속화됐다. 이는 2024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중동 분쟁 여파로 석유류 가격이 20% 넘게 치솟으며 전체 물가를 밀어 올린 결과다.
세부 항목을 보면 교통 분야가 전년 대비 9.7%로 가장 크게 올랐고, 오락·문화(3.4%), 주택·공공요금(1.7%) 등의 상승세도 뚜렷하다. 문제는 이 상승 압력이 가계 필수 지출 항목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장바구니 물가도 요동치고 있다. 한우 등심 가격은 100g당 1만4880원으로 1년 전보다 1500원 뛰었고, 국산 삼겹살도 100g당 2980원으로 같은 기간 1000원 상승했다. 필수 먹거리 가격이 오르면 외식비와 소비심리 위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2를 기록, 전월 대비 7.8포인트 급락했다. 지수가 기준선인 100을 밑돈 것은 약 1년 만으로, 소비자들이 경제 상황을 평균보다 ‘비관적’으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도체만 ‘활활’…내수에는 온기가 없다
코스피 7000 시대 이면에는 심각한 양극화 구조가 숨어 있다. 코스피를 7000선 위로 끌어올린 가장 큰 힘은 반도체 랠리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37조6103억원에 영업이익률 72%로 역시 역대 최고를 경신했다. 하지만 그 온기는 반도체 업종 안에만 머물고 있다. 반도체 이외 업종들은 대부분 코스피 상승을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으로, 올해 고점을 경신하는 섹터는 전체 시장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내수 체력 역시 취약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1.9%에서 2.5%로 상향 조정했다. 이 역시 반도체 수출 호조에 따른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설비투자 부문은 부진하고 건설투자는 중동 전쟁에 따른 공사비 상승 등의 영향으로 0.1%대 증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고물가가 소비 여력을 갉아먹는 가운데 제조업과 건설업이 동반 침체에 빠진 구도다.
◆반도체 초호황 끝나면 어쩌나
코스피는 지난해 10월 4000선에 오른 뒤 올해 1월 5000선, 2월 6000선, 최근 7000선을 잇달아 돌파해 어느덧 8000선 눈 앞에 있다. 이 속도 자체가 역설적으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상승의 동력이 반도체 단일 산업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수출 둔화 가능성이 가장 주목해야 할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수출과 이익은 늘어나지만, 증가율의 기저효과는 2~3분기 이후 서서히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미국의 상호관세 및 반도체 등 전자제품 관세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게 유지되고 있고, 향후 높은 관세가 부과될 경우 수출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현재의 반도체 낙관론이 꺾이는 시점이다. 과거 사례를 볼 때 반도체 사이클이 하락기로 접어들면 우리 경제는 즉각적인 충격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2018년 하반기부터 2019년까지 이어진 ‘메모리 쇼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글로벌 데이터센터들의 재고 조정과 수요 감소로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자, 한국의 수출액은 1년 넘게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그 여파로 2019년 경제성장률은 2.0%로 주저앉으며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고용 시장의 질적 저하도 문제다. 취업자 증가 폭은 인구 감소와 내수 부진의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줄어든 17만명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펀더멘털의 균열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사상 최고치라는 지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실질적인 체질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