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틱스 기반 실험실 자동화 기업 에이블랩스(대표 신상)가 121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를 마무리했다고 31일 밝혔다.
업체에 따르면 이번 투자는 이노폴리스파트너스가 주도했으며 IBK기업은행, 캡스톤파트너스, 호라이즌인베스트먼트, 마그나인베스트먼트, 퓨처플레이, 나우아이비캐피탈 등 7개 기관이 참여했다.
지난 2021년 문을 연 에이블랩스는 바이오 실험실 내 액체 핸들링(Liquid Handling) 공정을 자동화하는 로봇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공급해왔다. 연구원의 수동 피펫팅 작업을 정밀 로봇으로 대체하는 데서 나아가, AI가 실험 설계를 주도하고 도출된 데이터를 재학습하는 ‘자율실험실(Self-Driving Lab)’ 플랫폼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번 대규모 투자의 핵심 배경에는 ‘실험 데이터 생산 구조의 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고성능 AI 모델의 완성도는 학습 데이터의 질에 의해 좌우되지만 실험 데이터 생성은 여전히 연구자의 수작업에 머물러 있다. 실제 국제학술지 네이처 설문에서 연구진 1576명 중 70% 이상이 타 연구진의 실험 재현에 실패했다고 답했고, 과반은 본인 실험조차 재현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재현성이 담보되지 않는 실험값은 AI가 학습할 수 없는 비정형 데이터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실험실 자동화 장비의 도입 목적도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단순 인건비 절감이나 작업 속도 개선을 넘어, 동일 조건에서 오차 없는 균일한 데이터를 대량 확보하는 데이터 인프라로 가치가 재정립되는 추세다.
에이블랩스는 2025년 연간 매출 12.9억원을 달성하며 전년 대비 113% 성장을 기록했고, 2026년 상반기 수주 실적은 이미 지난해 연매출의 2배를 넘어섰다. KAIST, 부산대학교, 한국화학연구원 등 유수 연구기관과 국내 바이오 기업에 장비를 공급한 데 이어, 올해부터는 바이오를 넘어 첨단 산업군으로 수주 범위를 넓히고 있다.
미세 유체 분주는 용량이 작아질수록 오차 범위가 급증한다. 학술 연구에 따르면 숙련자가 10마이크로리터를 수작업으로 분주할 때 변동계수(CV)는 5.7~8.1% 수준까지 나타난다. 반면 에이블랩스는 전수 자동 검사 및 자체 보정 시스템을 생산 라인에 내재화해 8채널 20마이크로리터 기준 변동계수 1.5%의 정밀도를 확보했다. 여기에 미국 FDA 21 CFR Part 11(전자 기록·전자 서명) 규정과 ISO 13485(의료기기 품질경영시스템) 인증까지 충족하며 글로벌 시장 내 벤치탑 장비로서의 독보적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자율실험실 전략은 대형 국가 R&D 과제를 통해 탄력을 받고 있다. 에이블랩스는 현재 8건의 정부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 중이며, 5개년 누적 정부 지원금은 100억원을 상회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항체약물접합체(ADC) 자율제조 및 바이오파운드리 액체 핸들링 로봇 개발 과제를 주관하는 것은 물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와 오가노이드 배양·약물 효능평가 전자동화 플랫폼 공동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미국 FDA의 동물실험 단계적 폐지 로드맵 발표 이후 오가노이드 기반 검증 자동화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 업체 측 설명이다.
실험 자동화의 영역은 바이오를 넘어 다각도로 확장 중이다. 에이블랩스는 올해 반도체, 정밀화학, 화장품, 2차전지 등 4대 첨단 산업군의 품질 분석 자동화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주했다. 시료 전처리, 정량 희석, 연속 분주가 반복되는 품질관리(QC) 공정은 실험실 구조와 동일해 재현성이 품질 평가의 핵심이다. 또한 취급 물질의 유독성과 위험성이 높아 연구 인력을 유해 환경으로부터 격리해야 하는 만큼, 공정 재현성과 작업장 안전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자동화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
신상 에이블랩스 대표는 "AI가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지금 가장 중요해진 것은 연구 데이터와 실험 결과의 품질인데, 정작 그 데이터는 여전히 사람 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며 "로보틱스를 기반으로 한 자율 제조와 품질 평가 자동화로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수요가 산업 전반에서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바이오 외 산업에서 그 수요를 크게 확인하면서 사업이 확장되고 있다"며 "지금까지 축적해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프라 기술을 기반으로 자율실험실 사업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를 리드한 이노폴리스파트너스 측은 "자율실험실은 네이처가 2025년 주목할 기술로 꼽은 분야로, 글로벌 시장이 이제 막 상용화 국면에 들어섰다"며 "에이블랩스는 그 초입에서 이미 국내 대기업 연구개발 현장에 도입 실적을 만들었고 글로벌 빅파마 대상 영업까지 확대하고 있어, 섹터의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에이블랩스는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자율실험실 플랫폼의 기술 고도화와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에 집중 투입한다. 미국 및 유럽 현지 유통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R&D 전문 인력을 적극 채용할 방침이다. 현재 미국 대형 글로벌 제약사와 PoC(개념검증)를 밟고 있으며, 싱가포르 고객사 납품을 완료하며 해외 시장 공략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황지혜 기자 jihwang@segye.com